肅宗ㆍ英祖代 科擧制와 科文의 推移와 쟁점에 관한 일고찰

  •   본 논문은 조선 후기 科擧制에서 肅宗⋅英祖代 科擧制의 推移와 그 양상을 살펴보고 科文의 程式과 文體에 관한 논의와 쟁점이 되었던 사안들을 고찰하여 당대 科文과 관련한 논란의 핵심을 밝히고 그 推移를 규명한 글이다.

      먼저 肅宗⋅英祖代 科擧制의 흐름에서 주목할 만한 사안은 숙종 대부터 과거 시험의 시행이 확대됨에 따라 응시자가 대폭 증가하였고, 이로 인해 科場 관리의 부실 및 과거 시행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와 폐해가 극심해졌다. 특히 숙종 대에는 庭試가 자주 시행되면서 表文 작성에 유리한 서울 유생들의 합격률이 높아지는 한편, 表文의 빈번한 출제로 인해 응시자들이 科文 관련 類抄와 儷文選集類의 학습에 몰두하여 표절하고 답습하는 폐단이 심해졌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숙종 대와 영조 대에는 과거제와 관련한 폐단을 시정할 수 있는 대안을 모색하였으며, 일정 부분은 科擧事目에도 반영되었다.

      다음으로 肅宗⋅英祖代 科文의 程式과 文體에 관련한 논의와 그 쟁점이 되었던 사안들은 크게 科文의 격식과 문체에 대한 논란과 사륙문의 애호와 科表 위주의 선발로 인한 논란으로 요약할 수 있다. 조선 후기 科文의 격식과 문체에 대한 논란은 문체정책이 이루어졌던 정조 대가 아니라 숙종 초기부터 문제가 되었던 사안으로, 영조 대를 거쳐 정조 대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문제점으로 인식되었다. 肅宗⋅英祖代에는 科文의 程式에 맞지 않는 試券을 작성하거나 科文의 문체에 맞지 않는 용어와 語錄의 사용을 금지하도록 하였다. 이와 함께 科擧事目에 반영하여 국가적 차원에서 科文의 격식과 문체를 바로잡고 응시자의 기호에 따라 기괴한 작법과 용어를 쓰는 행위를 규제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지만, 실효를 거두지는 못하였다. 이러한 현상은 科文의 격식과 문체 변화 역시 개성적이고 신기함을 추구했던 조선 후기 文風의 변화와 맞물려 있었다. 그러므로 科文의 정식과 격식을 위배한 응시자를 처벌하고 이러한 응시자를 선발한 試官을 처벌하는 제도적 차원에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다음으로 조선 후기에 이르러 別試를 대체한 庭試 시행의 확대는 제도상의 변화 뿐 아니라 합격자의 선발 방식과 科文 문체의 변화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숙종 대부터 科文에서 表文을 중시하고 애호하는 현상이 두드러졌고, 그로 인해 과거를 준비하는 응시자 사이에서 表文의 학습이 중시되었으며, 儷文選集類에 대한 수요와 편찬이 확대되었다. 애초에 表文 위주의 선발은 문장에 능한 사람을 가려내기 위한 좋은 의도에서 비롯되었지만, 후대로 갈수록 표절과 모방의 답습 등 表文의 애호와 중시로 인한 폐단 역시 적지 않았다. 이러한 사실은 科擧制의 변화가 단순히 제도상의 변화와 머물지 않고 科文의 문체 변화에도 영향을 미쳤음을 방증한다.


  • 韓國漢文學硏究 83 ∥ 한국한문학회 ∥ 2021 ∥ pp.117-1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