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출처: youtube/제63회 3·1문화상 학술상 인문사회과학부문 심경호 명예교수/3·1문화재단/2022. 3. 2.)

교육신문 기사 링크

http://kuen.korea.ac.kr/news/articleView.html?idxno=171


한국을 대표하는 한문학자, 한문학 연구의 더 깊은 차원을 보다(심경호 고려대학교 한문학과 명예교수)

조영헌(이하 '조'): 3·1문화재단 인문사회과학부문 학술상을 받으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3·1문화상에 대해 잘 모르는 분들을 위해서 간략하게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심경호(이하 '심'): 3·1문화 학술상은 1959년에 설립된 3·1문화재단에서 수여하는 최초의 학술문화상입니다. 우리나라 학술상 중에 가장 오래되었죠. 저의 은사님들을 비롯하여 훌륭한 분들이 많이 수상하셨어요. 역대 수상자들을 보면 학계에서 어느 정도 인정받은 분들이죠. 묘한 부분은 3·1문화상이 수상 후보자를 추천받아서 진행되는데, 저는 제가 추천된 것도 몰랐고 지금까지도 누가 추천했는지 몰라요. 저도 신문을 보고야 알아서 깜짝 놀랐어요. 

  사실, 정년을 맞이하면 학문적으로 인정받기가 상당히 어려습니다. 하지만 본 학술상은 정년한 분들까지도 수상 대상으로 한다는 게 의의가 있고 용기를 주는 일 같아요. 정년을 맞이했다고 해서 학문의 길이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각인시켜준다는 면에서요.


  조: 영광스럽고 명예스러운 일이네요. 정년을 맞이하셨거나 정년을 앞두고 계신 교수님들 입장에서도 그동안 쌓인 업적들로 누군가의 추천을 받아 수상한다는 것은 굉장히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번에 수상하신 인문사회과학부문 학술상은 그동안 선생님께서 이루셨던 업적들을 종합적으로 심사받아 수상하신 건가요?

  심: 정확한 기준은 알 수 없지만, 명시되어 있기로는 ‘인문‧사회 및 자연과학분야에서 연구, 저작, 발표를 계속한 자’를 대상으로 누적된 업적 및 최근 5년간의 업적을 감안해 심사한다더라고요.


  조: 그렇군요. 아무래도 그동안 꾸준히 책을 쓰시고 후학들한테 많은 긍정적인 영향을 주시는 등, 학문과 문화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고 인정되셔서 수상하셨다고 생각합니다. 

  연구에 대한 열정과 저술 작업 등은 많은 힘과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데요. 학문에 계속 정진하실 수 있는 정수(精髓) 내지 동기들은 무엇이 있을까요?

  심: 글쎄요. 모든 공부하시는 분들은 어떠한 목적이나 동기가 있으실 텐데요. 저는 개인적으로 어렸을 때부터 상당히 무언가를 탐구하는 것을 좋아했어요. 문과대학 국문학과에 진학한 후 남들이 하지 않는 분야를 개척해야겠다는 생각에 한문학을 선택하였습니다. 과거의 것을 정리하고 결산 보고서를 내며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우리나라 전통사회는 모든 것이 다 한문으로 되어 있습니다. 모든 밑바닥의 경제, 정치부터 시작해서 고도의 미학까지 다 한문으로 되어 있어요. 게다가 그 층위도 중국식 한문, 한국식 한문, 향찰 등 다양하죠. 누가 정리를 해놨으면 그냥 배우면 될 텐데, 공부를 하면 할수록 내가 몰라서, 내가 정리해야겠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매년 여러 계획을 세워서 모르는 것들을 연구해왔는데, 사실 비석 하나를 연구하는 데에 7~8년 걸리는 등 오랜 공부가 필요합니다. 

  인문학의 특징이 연관성인데, 그 연관성이 평면으로는 멀리 보이지만 입체적으로 보면 상당히 가깝잖아요. 굉장히 멀어 보이던 것이 관점을 달리하면 가까운 것이기 때문에 다양한 연구를 동시에 할 수밖에 없어요. 구가 작으면 접촉면이 적잖아요. 그럼 모르는 것도 적을텐데, 구가 자꾸 커지면 커질수록 인간이라는 게, 모르는 걸 알고 싶은 욕망이 커지는 거 같아요. 요즘은 자연과학을 공부하느라고 잠을 못 잡니다. 요새는 ‘성호사설’을 계속 연구하고 있어요.


  조: ‘한문’을 왜 배워야 할까요? 총체적인 학문을 함에 있어서, 그리고 한국인의 사상을 이해하는 데에 있어서 한문을 어느 정도까지 알면 좋을까요? 

  심: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 개념들 및 이름들을 보면 한문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모든 것이 다 한문이고 또 명명이라는 것을 통해서 그 사물들이 구축되어 있습니다. 한문의 깊은 뿌리 속에 의미 세계가 있습니다. 한문을 모르게 되면 자기 사회를 이해하는 데 어떤 학문을 하더라도 어려울 것 같습니다. 심리학의 본래 용어는 성리학, 철학의 본래 용어는 현학, 국어라는 말도 국사에서 비롯된 일본말입니다. 국체 사상하고도 관련이 있고, 용어에 더덕더덕 붙어있는 역사성과 현대 의미의 고착성도 관련되어 있습니다. 우리 사회는 앞으로 계속 변해가겠지만, 아직 한문은 우리 인간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개념이자 용어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름의 의미를 모르는 것은 피상적입니다. 불행하게도 한자 및 한문의 세계가 침륜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한문 교육을 열심히 해야 합니다. 요즘 주식이 열풍인데 주식이 왜 ‘주식(株式)’인지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동아시아에서 우리가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자 하면 자기 것에 대해서 반성이 많아야 하는데, 현대적으로 이 점을 소홀히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글로 쓰는 것은 편하긴 하지만 진짜 공부하는 사람들은 문화적인 맥락과 역사의 맥락까지 알아야 합니다. 한자음을 공부한다는 것은 결국 우리가 이루어지는 관습 패턴을 이해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려운 한자까지 많이 알 필요 없습니다. 상형 한자를 제대로 알고 1,800자 정도만 알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학생들에게 부담을 준다는 이유로 교육과정에 한자가 선택과목이 되어버렸는데, 저는 한문과 수학은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대학에서는 기초 공부를 하지 않으면 국어도 이해를 못합니다. 너무 편의주의로 가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조: 맞습니다. 많은 개념의 뿌리를 찾으려면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어원을 찾아 들어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됩니다.

  심: 우리나라는 뿌리에 대한 반성이 없다는 사실이 안타깝습니다. 뿌리 있는 말들은 뒤로 하고 외래어나 남아 있는 일본어를 많이 사용합니다. 국문학에서도 이에 대해 연구하는 사람이 많이 없고, 국어교육에서도 이와 관련한 교육을 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독자성을 잃어버렸습니다.

  북한에는 오히려 한자가 많습니다. 주체사상을 위해 한자를 사용하는 이유는 한자를 알지 않으면 사상을 교육시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자기 언어에 대한 반성을 하지 않으면서 변별할 능력을 가지지 못한 채 우리가 어떻게 철학을 하겠어요. 우리나라에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없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인문학에서 철학 사상을 못 만들고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고전에 대한 성찰이 요구됩니다. 

출처 : 교육신문(http://kuen.korea.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