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과거 낙폭지(落幅紙)의 재활용 문화

  •   이 논문은 조선 시대 과거 시험의 답안지인 시권(試券)이 고시 후 어떻게 재활용되었는지 살펴보는 데 그 목적이 있다. 본격적인 논의에 앞서 조선시대 관청에서 사용한 여러 종이 물자들의 실태에 대해 우선적으로 살펴보았다. 관청에서 사용하는 여러 공문서에 후지(厚紙)를 쓰려는 관습 등으로 인해 종이 물자가 부족해진 상황이 심각하게 도래하였으며, 이러한 상황 속에서 낙방한 사람들의 답안지인 낙폭지는 재활용되기에 좋은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었다. 낙폭지는 군사물품과 영건(營建)에 필요한 여러 작업의 부재(部材), 각종 문서 및 서적의 포장과 병풍 등 서화류 미술품의 배접, 의례시 필요한 의복과 기구, 각종 장인들이 만드는 기물 등 종이가 필요한 거의 모든 곳에 재활용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감시낙폭지는 모든 분야에 골고루 활용되었으며, 정시낙폭지는 영건과 장인들의 기물에 주로 쓰였고 동당낙폭지는 서적의 포장에서 대부분 활용되었다. 시기가 흐를수록 낙폭지의 활용처는 더욱 확대되고 세분화되는 양상을 보였다. 현재 유물의 보존처리 과정에서 낙폭지들이 하나씩 발견되고 있는 바, 이를 분석하는 작업을 통해 해당 문화재의 제작 시기 및 원형 상태를 추측하는 단서가 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이 또한 제대로 보관하고 분석해 보아야 할 문화재라는 인식이 제고되어야 할 시점이다.



  • 창덕궁 인정전 '일월오봉도병풍'의 뒷판 앞면(좌)과 낙폭지 일부(우)


  • 경복궁 사정전 '쌍룡도벽화'의 뒷면(좌)과 낙폭지 일부(우)

  • 민족문화연구 92 ∥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 2022 ∥ pp.187-210